불편함이 없애는 불편함

예전에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주변 사람한테 거의 하지 않았다. 다들 좋지 않게 봤아서였던 것 같다. 최근에 재검을 받고, 국가공인 양극성 장애 환자가 되었다. 그 이후로 몇 번인가 내가 양극성 장애를 갖고 있다고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조금 편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양극성 장애를 갖고 있다고 얘기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조울증이 탈모나 당뇨병이 된 것 같았다. 물론 당뇨와 탈모는 심각한 질병이다.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당뇨나 탈모를 가진 사람은, 병 때문에 힘든 사람이지만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이전의 나는 힘들겠지만, 동시에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냥 힘든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변화를 느끼다니, 세월 참 빠르고,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네 생각함과 동시에, 정신병 말고도 사람들의 인식이 변한 것들이 꽤 되는 것 같았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담배와 섹슈얼리즘인 것 같다.

티비쇼에서 담배를 피던 시절

내 기억에, 내가 초등학교를 갓 들어갈 때 즈음엔, TV에서 담배피우는 장면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던 시절

조금 더, 내가 태어나기도 더 전에는, 버스 안에서도 담배를 피워도 괜찮은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이게 불편하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은 인지하지도 못했을 것 같다. (정확하지는 않고, 과학적 연구도 많이 있었겠고, 다른 이유도 많이 있었겠지만)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담배연기를 맡았을 때 불편하다, 혹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소수의 사람이 생겨났을 것 같다. 그리고는,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결과가 지금의 담배피우는 것이 힘들어진 대한민국이다.

옛날옛적 티비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런 방송이 하나씩은 꼭 있었다. 티비엔젤스는 그중 가장 야한 편이긴 했는데, 암튼 저런 것들이 하나씩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전히 인터넷에 여BJ라고만 검색해도 저것보다 훨씬 야한 것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옛날 코난만화

저런 식으로 성희롱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막상 그렇게 드물지도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줄은 것 같다, 없다고 단언은 못하겠다. 다 감옥에 가 계신 걸까, 저런 성격이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사실 인지하지 못하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성희롱은 잘못된 게 맞는 것 같다. 성적 대상화나 섹슈얼리즘에 대해서는… 나는 수요자와 공급자 둘 다 만족한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아무튼, 수많은 불편한 사람들이 사람들의 인식을 열심히 바꾸었고, 지금도 열심히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나는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도, 페미니스트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뭐 그렇게 사소한 것에 불편해하는 걸까 싶었다. 근데, 정신병에 대한 인식을 바꾼 것도 남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부당함을 지적하고 언급하는 그 수많은 불편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불편함 때문에 내가 덜 불편할 수 있었다. (사실 인식이 아직 개똥같다.)

슬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2212119712902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나도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부당함에 대해서는 지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여담

여전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은 밑바닥에 있다. 하지만 나는 병신힙스터기질이 있으므로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은근 즐기므로, 양극성 장애가 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밝힐 것이다.

사실, 신경증 환자도 다른 사람과 어울려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진 다른 2형 양극성 장애 환우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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