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는 공감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람이 정말 많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 약자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은 걸러야 한다는 말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와 다른 감정에는 가장 공감하지 못하는 장면도 많이 봤다. 자기편의 고통은 반드시 이해해야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려 하면 그 사람을 옹호하는 것이 된다. 자기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상대의 논리를 반박하는 대신 공감능력이 없다고 한다.
공감이 중요하다면서 공감할 대상을 미리 정해두고, 허락된 감정에만 공감하는 셈이다. 이 모순이 이상해서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성폭행범에게도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는 당연히 공감한다. 범행 당시의 공포와 수치심, 이후에도 일상을 침범하는 기억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상상할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건에서는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훨씬 강하게 공감할 것이다.
한쪽의 감정을 이해한다고 다른 쪽을 이해할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감은 동의가 아니다
성폭행범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말은 범죄에 동의한다는 뜻도, 용서하거나 감형하자는 뜻도 아니다. 그 사람이 느낀 욕망과 자기합리화, 범행이 들킨 뒤의 공포와 수치심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따라 느끼는 일이다. 동의는 상대의 주장이나 행동이 옳다고 판단하는 일이다. 공감하면서 동의하지 않을 수 있고, 공감하지 못하면서도 어떤 주장에 동의할 수 있다.
이해의 반대는 비난이 아니라 몰이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아주 잘 이해하면서도 강하게 비난할 수 있다.
오히려 책임을 정확히 물으려면 어느 정도 이해가 필요하다. 그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상대의 거부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어떤 선택지를 갖고도 범행을 택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범죄자를 그냥 괴물이라고 부르면 편하다. 괴물은 나와 다른 종이므로 더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성범죄자를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들면,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상대의 거부를 무시하고 자기 욕망을 정당화하며 범죄에 이르는지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이해를 금지하면 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한 설명만 사라진다.
나는 조주빈이 왜 나쁜 놈이 되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조주빈은 25살에 검거되었다. 그는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만들고 유포했으며, 역할을 나눈 박사방은 범죄집단으로 인정되었다. 형량은 징역 42년이었다. (대법원 판결 소개, KBS 보도)
25살이 될 때까지 자발적인 연애를 해보려고 계속 노력했다고 상상해보자. 외모를 꾸미고, 여자에게 말을 걸고, 소개를 부탁하고, 어플도 돌린다. 하지만 여자들은 계속 나 말고 다른 남자를 고른다. 나도 성욕이 있고 누군가에게 선택받고 싶은데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
조금 더 구체적인 가상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대학에 친하게 지내는 여자 후배가 있다. 과제와 취업 준비를 도와주고, 같이 밥을 먹고, 밤늦게 고민도 나누면서 꽤 가까워졌다. 남자는 자기도 후배에게 특별한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해 조심스럽게 호감을 표현한다.
후배는 선을 긋는다.
“선배는 정말 좋은 사람인데 남자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후배는 관계를 애매하게 남기지 않으려고 명확히 말했을 수 있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그동안 쌓인 관계가 한 문장으로 잘려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호의의 대가로 연애를 요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물러난다.
얼마 뒤 그 후배가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잘생긴 남자와 그날 바로 잤다는 소문을 듣는다. 사실인지 과장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상처받은 남자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자기는 몇 달 동안 관계를 쌓고도 좋은 선배였을 뿐인데, 다른 남자는 처음 만난 날 자기가 원했던 것을 얻었다.
천천히 신뢰를 쌓고 진심을 보여야 한다는 말을 믿었는데, 여자가 원하는 남자에게는 그런 절차가 필요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자신에게만 인내와 예의가 요구되었고, 잘생긴 남자에게는 문이 처음부터 열려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여자의 입장에서는 모순이 아니다. 도움을 연애나 섹스로 갚을 의무는 없고, 인간적인 호감과 성적 끌림은 다르다. 다른 남자에게 동의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동의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너는 남자로서 가치가 없다”는 판결처럼 들릴 수 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개별적인 거절은 여성 전체의 위선으로, 과거의 호의는 이용당한 기억으로 바뀐다. 사실과 다른 해석일 수 있어도, 원래 잠긴 문이 아니라 나에게만 잠긴 문을 본 듯한 굴욕감은 이해할 수 있다.
한 번의 실연으로 사람이 그렇게까지 흑화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운동하고, 옷과 머리를 바꾸고, 대화법과 매칭어플 프로필까지 고쳐도 비슷한 거절이 계속될 때다. 각 여성은 자기 마음에 따라 한 번씩 거절했을 뿐이지만, 한 남자에게 그 결과가 수십 번 쌓이면 세상 전체가 “너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다시 기대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깎여나간다. 그 상처에 공감하는 것과 여성에 대한 원망을 옳다고 말하는 것은 별개다. 다만 수년간 반복된 거절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도 이상하다.
물론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모두 반사회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개별적인 거절과 타인의 권리를 구분하고, 상처를 견디거나 다른 삶의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회복하지는 않는다. 일부는 반복된 거절을 세상이 자기를 부당하게 배제했다는 결론으로 일반화하고,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타인의 자유와 권리까지 존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결론은 잘못됐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심리적 경로가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복된 거절이 반사회성의 충분조건이라는 뜻도 아니고, 범죄자의 책임을 줄이자는 뜻도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주장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연애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 남자를 ‘도태남’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도태남이라는 말은 단순히 인기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자연선택에서 탈락했고 번식할 가치가 없는 열등한 개체라는 뜻을 담는다. 그 남자가 가장 두려워했던 결론을 한 단어로 확정해주는 셈이다.
그 상처를 전혀 상상하지 못한다면 공감은 그 대상에게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얼마나 아픈지 알고 일부러 말했다면, 정확히 어디를 찔러야 하는지 알고 찌른 것이다. 후자는 공감능력과 선함이 다르다는 사실을 더 잘 보여준다.
조주빈이 실제로 어떤 연애를 시도했는지는 모른다.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검거 당시 25살이었고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는 증언 정도다. (SBS 보도) 위의 이야기는 확인된 전기가 아니라 내가 그의 심리에 도달하기 위해 그려본 하나의 경로다.
그래도 이런 종류의 흑화는 이해할 수 있다. 조주빈이 특별했던 것은 흑화했다는 점만이 아니라, 나쁜 짓을 실제로 벌이고 확장할 능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피해자의 약점을 얻어 더 심한 요구를 하고, 사람을 모집해 역할과 규칙을 만들었다. 피해자의 공포를 상품으로 바꿀 만큼 사람을 읽고 조종할 능력이 있었다. 피해자의 마음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그 이해를 지배에 사용했다.
물론 연애 실패가 박사방을 만든 것은 아니다. 외로움과 성적 좌절은 분노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범죄의 권리를 만들지 않는다. 연애 실패와 범죄 사이의 간격을 건넌 것은 조주빈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조주빈의 흑화에는 공감할 수 있지만 박사방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불운이고 어디서부터가 선택이었는지 구분하는 것이 악인을 이해하는 이유다.
공감은 능력이지 인성이 아니다
공감은 대강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상대가 무엇을 느끼는지 파악하는 인지적 공감과, 상대의 감정이 내 안에도 어느 정도 재현되는 정서적 공감이다. 여기에 연민, 배려, 이타성까지 전부 공감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다른 개념이다.
공감은 레이더와 비슷하다. 구조선에도 레이더가 달리고 미사일에도 레이더가 달린다. 대상을 정확히 찾는 능력은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결정해주지 않는다.
사람 마음을 잘 읽는 능력은 상담과 돌봄에도 쓸 수 있지만 사기, 가스라이팅, 협박에도 쓸 수 있다. 위로할 때도 정확한 말을 고르고, 모욕할 때도 정확한 말을 고른다.
가학적인 사람에게 타인의 고통은 제거해야 할 신호가 아니라 쾌감의 재료일 수도 있다. 실제로 수감 남성을 조사한 한 연구에서는 성적 가학성 점수가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능력과 양의 관계를 보였다. 감정을 직접 지각하는 능력과는 유의한 관계가 없었고 표본도 제한적이므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래도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종류의 공감능력이 낮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반례는 된다.
타인의 고통을 알아차리는 능력은 간호사의 도구일 수도 있고 고문자의 도구일 수도 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능력의 높이가 아니라, 그 정보를 가지고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공감능력이라는 범용 욕설
일상에서 공감능력이라는 말은 거의 인성 점수처럼 쓰인다. 감정 인식, 맞장구, 사회성, 동의, 연민, 이타성과 도덕적 판단이 한 단어에 전부 섞여 있다.
네이트판의 한 글에서는 아내가 하소연을 들어주고 연어회와 술까지 준비했는데도 적극적으로 맞장구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감능력이 없다고 한다. 여기서 공감은 맞장구다.
다른 글은 공감능력의 반대를 이기심과 무배려, 그 반대를 이타성과 존중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공감은 좋은 인성 전체다.
82cook의 고민 글에서는 맥락을 건너뛰고 말을 끊는 행동을 공감능력 부족이라고 한다. 여기서 공감은 대화 기술과 예의다.
정준영 사건 때는 사적 제재의 한계를 말한 변호사에게 ‘공감능력이 모자란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기사) 여기서 공감은 같은 의견을 내라는 요구다.
맞장구, 인성, 대화 기술과 의견 일치가 전부 공감능력이라는 한 단어로 불린다. 이 정도면 공감능력은 원인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붙이는 범용 욕설에 가깝다.
특히 “나에게 공감해달라”는 말은 종종 “내 편을 들어달라”는 뜻으로 쓰인다. 내가 화난 이유를 정확히 이해해도 판단에 동의하지 않으면 공감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반대로 내 이야기를 별로 이해하지 못해도 같이 욕해주면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이 된다.
그쯤 되면 공감은 심리적 능력이 아니라 충성심 테스트다.
공감은 논증이 아니다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이유만으로 개별 사건의 모든 진술이 자동으로 사실이 되거나 특정한 형량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의 심리를 이해한다고 감형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에는 증거가 필요하고 판단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공감은 공평하지도 않다. 우리는 나와 닮은 사람, 좋아하는 사람, 얼굴과 사연을 아는 사람에게 더 쉽게 공감한다. 같은 고통이라도 내 집단에는 크게 반응하고 경쟁 집단에는 무감각해진다. 집단 간 공감 연구에서도 이런 편향이 반복해서 관찰되었다.
공감은 스포트라이트와 비슷하다. 한 사람을 밝게 보여주지만 빛 밖의 사람까지 공평하게 세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권리와 책임, 법과 정책에는 공감뿐 아니라 증거와 원칙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미워해야만 처벌할 수 있다는 생각도 위험하다. 처벌에 필요한 것은 올바른 증오가 아니라 올바른 근거다. 피해자가 기대한 방식으로 울지 않아도 사실을 공정하게 판단하고, 가해자가 불쌍하게 느껴져도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감과 동의는 끝까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자기 주장에 대한 근거 대신 상대의 공감능력을 공격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왜 내 주장이 맞는지 설명하지 않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차갑고 이기적이며 공감능력 없는 인간으로 만든다. 논증의 문제를 상대의 인성 문제로 바꾸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공감을 핑계로 자기 주장의 논증 부족을 덮는 사람이 너무 많다. 주장이 맞다면 사실과 논리로 설명하면 된다. 근거가 부족하면 근거를 더 가져와야지,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공감능력 없는 인간으로 만들 일은 아니다.
References
- Emotional intelligence in incarcerated sexual offenders with sexual sadism
- Understanding the dark side of personality in sex offenders considering the level of sexual violence
- The role of empathy in trolley problems and variant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 Empathy and humanitarianism predict preferential moral responsiveness to in-groups and out-groups
- Their pain gives us pleasure: How intergroup dynamics shape empathic failures and counter-empathic responses
- 대법, 박사방 범죄단체 인정·조주빈 징역 42년 확정
- 조주빈이 그린 박사방 조직도와 범죄집단 구조
- 공감능력 없어도 너무 없는 사람 어떻게 해야 하나요
- 걸러야 될 사람
- 논리 부족, 공감능력 부족
There are a great many people on the internet who say they consider empathy important. You often see people say that we must understand others’ pain, that we must think from the perspective of the weak and of victims, and that people who lack empathy should be filtered out.
Strangely, though, I have also seen many scenes where the people who frequently say such things are the least capable of empathizing with emotions different from their own. The pain of people on their side absolutely must be understood, but trying to understand the emotions of someone they dislike becomes defending that person. If you do not agree with their claim, instead of rebutting your logic, they say you lack empathy.
They say empathy is important while deciding in advance who may receive it, empathizing only with approved emotions. I found this contradiction strange, which is why I wrote this post.
I can empathize even with a rapist.
And of course I empathize with the victim. I can imagine the fear and humiliation during the crime, the memories that continue to intrude on everyday life afterward, and the anger toward the perpetrator. In probably most cases, I would empathize far more strongly with the victim than with the perpetrator.
Understanding one side’s emotions does not make the ability to understand the other side disappear.
Empathy Is Not Agreement
Saying that I can empathize with a rapist does not mean that I agree with the crime, nor does it mean that I want to forgive him or reduce his sentence. It means that I can understand the desire and self-justification he felt, and the fear and humiliation he felt after his crime was discovered.
Empathy is understanding or vicariously feeling another person’s emotions. Agreement is judging that another person’s claim or action is right. You can empathize without agreeing, and you can agree with a claim without being able to empathize.
The opposite of understanding is not condemnation but incomprehension. We can understand someone very well and still condemn them strongly.
In fact, holding someone precisely accountable requires a degree of understanding. This is because we need to know what that person knew, how he perceived the other person’s refusal, and why he chose to commit the crime despite having other options.
It is easy to simply call a sex offender a monster. A monster is a different species from me, so there is no need to think any further. But if we turn sex offenders into beings who are not human, we become unable to explain how an ordinary human being ignores another person’s refusal, justifies his own desire, and ends up committing a crime.
Banning understanding does not make evil disappear. It only makes explanations of evil disappear.
I Think I Understand a Little Why Cho Ju-bin Became a Bad Guy
Cho Ju-bin was arrested at the age of 25. He blackmailed women into creating and distributing sexually exploitative material, and the Doctor’s Room, whose members divided up roles, was recognized as a criminal organization. He was sentenced to 42 years in prison. (Supreme Court ruling overview, KBS report)
Imagine that until the age of 25, he kept trying to have a consensual romantic relationship. He works on his appearance, talks to women, asks people to introduce him to someone, and uses dating apps too. But women keep choosing other men instead of me. I have sexual desires too, and I want someone to choose me, but nobody wants me.
Let’s consider a somewhat more specific hypothetical case.
There is a female junior at university whom he is close to. He helps her with assignments and job preparation, they eat together, and they share their worries late at night, becoming fairly close. The man thinks he might also be someone special to his junior and cautiously expresses his feelings for her.
The junior draws a line.
“You’re a really good person, but I’ve never thought of you as a man.”
The junior may have spoken clearly because she did not want to leave the relationship ambiguous. But to the man, it feels as though the relationship they had built has been cut away with a single sentence. Even so, he steps back, thinking that he cannot demand romance in return for his kindness.
Not long afterward, he hears a rumor that the junior slept that same day with a handsome man she met for the first time at a drinking party. He does not even know whether it is true or exaggerated. But to a man who is already hurt, that does not matter. He spent months building a relationship only to be a good senior, while another man got what he had wanted on the very day they first met.
He believed the advice that he should slowly build trust and show sincerity, but it seems as though none of that process was necessary for a man the woman wanted. It feels as though patience and courtesy were demanded only of him, while the door had been open to the handsome man from the beginning.
Of course, from the woman’s perspective there is no contradiction. She has no obligation to repay help with romance or sex, and personal affection is different from sexual attraction. The fact that she consented to another man does not give her a reason to consent to me.
But to the man, it may sound like a judgment that says, “You have no value as a man.” When similar things happen repeatedly, individual rejections turn into the hypocrisy of all women, and past acts of kindness turn into memories of being used. Even if that interpretation differs from the facts, it is possible to understand the humiliation of feeling as though he saw not a door that was always locked, but one locked only to him.
One heartbreak does not make someone turn that dark. The problem is when similar rejections continue even after he works out, changes his clothes and hair, and even revises the way he talks and his dating-app profile. Each woman merely rejected him once according to her own feelings, but when the result piles up dozens of times for one man, it can sound as though the entire world is saying, “You are not worthy of love.”
He hopes and is disappointed, then feels ashamed of himself for hoping again, and his heart is gradually worn away. Empathizing with that wound is separate from saying that resentment toward women is right. But it is also strange to demand that years of repeated rejection should leave no trace at all.
Of course, not everyone who experiences the same thing becomes antisocial. Most people distinguish individual rejection from the rights of others and endure the hurt or find other meaning in life. But not everyone recovers in the same way. Some may generalize repeated rejection into the conclusion that the world has unjustly excluded them and decide that there is no need to respect even the freedom and rights of those who did not accept them.
That conclusion is wrong, but the point is that a psychological path to reaching it can exist. This does not mean that repeated rejection is a sufficient condition for antisociality, nor does it mean that a criminal’s responsibility should be reduced.
On the internet, you often see claims that women have greater empathy than men on average. At the same time, some people call men who are not chosen in the dating market “淘汰男,” or “eliminated men.”
The term “eliminated man” does not simply mean unpopular. It carries the meaning of an inferior individual who has lost out in natural selection and is not worthy of reproducing. It confirms in a single word the conclusion that the man feared most.
If someone cannot imagine that hurt at all, their empathy did not operate toward that person. If they knew how much it hurt and said it deliberately, they knew exactly where to stab and stabbed there. The latter shows even more clearly that empathy and goodness are different things.
I do not know what kinds of romantic relationships Cho Ju-bin actually tried to pursue. What can be publicly confirmed is that he was 25 when arrested and that there was testimony that his social relationships were not good. (SBS report) The story above is not a verified biography but one path I imagined in order to reach his state of mind.
Even so, I can understand this kind of descent into darkness. What made Cho Ju-bin unusual was not only that he turned dark, but that he had the ability to actually carry out and expand his wrongdoing.
After obtaining leverage over victims, he made more extreme demands, recruited people, and created roles and rules. He had enough ability to read and manipulate people to turn victims’ fear into a product. It was not that he did not understand the victims’ minds; he used that understanding to dominate them.
Of course, romantic failure did not create the Doctor’s Room. Loneliness and sexual frustration can explain anger, but they do not create a right to commit crimes. It was Cho Ju-bin’s own judgment and choices that crossed the gap between romantic failure and crime.
So I can empathize with Cho Ju-bin’s descent into darkness, but I do not agree with the Doctor’s Room. Distinguishing how far something was misfortune and where it became a choice is the reason to understand an evil person.
Empathy Is an Ability, Not Character
Empathy can be roughly divided into two kinds: cognitive empathy, which identifies what another person is feeling, and emotional empathy, in which the other person’s emotions are reproduced to some degree within oneself. Compassion, consideration, and altruism are all also called empathy, but they are actually different concepts.
Empathy is like radar. Rescue ships have radar, and missiles have radar too. The ability to locate a target accurately does not determine what to do next.
The ability to read people’s minds well can be used for counseling and care, but it can also be used for fraud, gaslighting, and blackmail. A person chooses precise words when offering comfort and precise words when insulting someone.
For a sadistic person, another person’s pain may not be a signal to eliminate but material for pleasure. In fact, one study of incarcerated men found that sexual sadism scores had a positive relationship with the ability to understand and manage emotions. There was no significant relationship with the ability to directly perceive emotions, and the sample was limited, so this cannot be generalized. Still, it serves as a counterexample to the claim that committing a cruel crime alone means that every kind of empathic ability must be low.
The ability to notice another person’s pain can be a nurse’s tool or a torturer’s tool. What makes the difference is not the level of the ability, but what someone wants to do with that information.
“Empathy” as an All-Purpose Insult
In everyday life, the word empathy is used almost like a character score. Emotion recognition, verbal agreement, sociability, agreement, compassion, altruism, and moral judgment are all mixed together in one word.
In one post on Nate Pann, a wife is said to lack empathy because she did not actively chime in, even though she listened to the complaints and even prepared salmon sashimi and alcohol. Here, empathy means chiming in.
Another post describes the opposite of empathy as selfishness and inconsideration, and their opposites as altruism and respect. Here, empathy means good character as a whole.
In a post asking for advice on 82cook, skipping over context and interrupting someone is called a lack of empathy. Here, empathy means conversational skill and manners.
During the Jung Joon-young case, a lawyer who spoke about the limits of private punishment was criticized for “lacking empathy.” (Article from the time) Here, empathy means a demand to express the same opinion.
Chiming in, character, conversational skill, and agreement of opinion are all called by the single word empathy. At this point, empathy is less a term that explains a cause and more an all-purpose insult attached to someone you dislike.
In particular, “Please empathize with me” is often used to mean “Please take my side.” Even if someone understands exactly why I am angry, if they do not agree with my judgment, they become someone who failed to empathize. Conversely, even if they do not really understand my story, if they curse along with me, they become someone with high empathy.
At that point, empathy is not a psychological ability but a loyalty test.
Empathy Is Not an Argument
Empathizing with a victim’s pain does not automatically make every statement about an individual case true or make a particular sentence right. Understanding the perpetrator’s psychology does not justify a reduced sentence either. Facts require evidence, and judgments require reasons.
Empathy is not fair, either. We empathize more easily with people who resemble us, people we like, and people whose faces and stories we know. Even when the pain is the same, we react strongly to our own group and become indifferent to a competing group. Studies of intergroup empathy have repeatedly observed these biases.
Empathy is like a spotlight. It shows one person brightly, but it does not count the people outside the light fairly. That is why rights and responsibilities, law and policy require not only empathy but also evidence and principles.
The idea that we can punish someone only if we hate them is also dangerous. Punishment requires not correct hatred but correct grounds. We must be able to judge the facts fairly even if a victim does not cry in the expected way, and hold a perpetrator responsible even if we feel sorry for him.
Empathy and agreement remain separate issues to the very end.
And yet, on the internet, people too often attack someone else’s empathy instead of providing grounds for their own claim. Without explaining why their claim is right, they turn anyone who disagrees into a cold, selfish person without empathy. They turn a problem of argument into a problem with the other person’s character.
In my view, far too many people use empathy as an excuse to cover up the lack of argument behind their own claims. If a claim is right, it can be explained with facts and logic. If the grounds are insufficient, they should bring more grounds, not turn people who disagree into people without empathy.
References
- Emotional intelligence in incarcerated sexual offenders with sexual sadism
- Understanding the dark side of personality in sex offenders considering the level of sexual violence
- The role of empathy in trolley problems and variant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 Empathy and humanitarianism predict preferential moral responsiveness to in-groups and out-groups
- Their pain gives us pleasure: How intergroup dynamics shape empathic failures and counter-empathic responses
- Supreme Court recognizes Doctor’s Room as a criminal organization and confirms Cho Ju-bin’s 42-year prison sentence
- The Doctor’s Room organization chart drawn by Cho Ju-bin and its criminal organization structure
- What should I do about someone who has far too little empathy?
- People you should filter out
- Lack of logic, lack of empathy
网上有很多人认为共情能力非常重要。必须理解他人的痛苦,必须站在弱者和受害者的立场思考,没有共情能力的人应该筛掉——这类话随处可见。
但奇怪的是,我也经常看到,越是常说这种话的人,面对与自己不同的感受时反而最无法共情。自己这一边的痛苦必须得到理解,但如果试图理解自己讨厌的人的感受,就成了替那个人辩护。如果不同意自己的主张,他们不去反驳对方的逻辑,反而说对方没有共情能力。
嘴上说共情很重要,却预先规定好共情的对象,只对被允许的感受共情。正因为觉得这种矛盾很奇怪,我才写了这篇文章。
我连强奸犯也能共情。
而且我当然也共情受害者。我能想象案发时的恐惧与羞耻,以及事后依旧侵入日常生活的记忆和对加害者的愤怒。恐怕在绝大多数案件里,我对受害者的共情都会远远强于对加害者的共情。
理解一方的感受,并不会让人失去理解另一方的能力。
共情不是赞同
说我能共情强奸犯,并不意味着我赞同犯罪,也不意味着我要原谅他或为他减刑。它的意思是,我能理解那个人感受到的欲望与自我合理化,以及罪行败露后的恐惧与羞耻。
共情,是理解对方的感受,或跟着感受到类似的情绪。赞同,是判断对方的主张或行为是正确的。人可以一边共情一边不赞同,也可以无法共情却赞同某种主张。
理解的反面不是谴责,而是不理解。我们可以非常理解一个人,同时强烈谴责他。
反而,要准确追究责任,就需要一定程度的理解。因为必须弄清楚那个人知道些什么、如何认识对方的拒绝、明明有哪些选项却仍选择了犯罪。
把性犯罪者简单叫作怪物很轻松。怪物和我不是同一物种,所以不必再多想。但如果把性犯罪者塑造成非人的存在,我们就无法解释一个普通人是如何无视对方的拒绝、合理化自己的欲望,最终走向犯罪的。
禁止理解,并不会让恶消失,只会让对恶的解释消失。
我似乎有点明白赵主彬为什么成了坏人
赵主彬在25岁时被捕。他胁迫女性制作并传播性剥削材料,实行角色分工的“博士房”被认定为犯罪集团。他被判处有期徒刑42年。(韩国大法院判决介绍,KBS报道)
不妨想象一下,他直到25岁都一直努力尝试谈一场双方自愿的恋爱。打扮外表,主动和女人说话,请别人介绍对象,也使用交友软件。但女人们总是选择别的男人,而不是我。我也有性欲,也想被某个人选择,可是谁都不想要我。
再想一个更具体的虚构案例。
大学里有一位关系亲近的女学妹。帮她做作业、准备求职,一起吃饭,深夜也互相倾诉烦恼,两人变得相当亲近。男人觉得自己对学妹而言或许也是特别的人,于是小心翼翼地表达了好感。
学妹划清了界线。
“学长真的是个很好的人,但我从没把你当男人想过。”
学妹可能是为了不让关系继续暧昧下去,才说得很明确。但对男人来说,仿佛一直以来积累的关系被一句话斩断了。即便如此,他认为不能把恋爱当作自己付出好意的回报,于是退了回去。
不久后,他听说那个学妹和在酒局上初次见面的帅哥当天就上了床。不知道这是真的还是夸张。但对已经受伤的男人而言,这并不重要。自己花了几个月建立关系,结果也不过是个好学长,另一个男人却在初次见面的那天就得到了自己想要的东西。
他原本相信应该慢慢建立信任、展现真心,可看起来,对女人真正想要的男人而言,这些程序根本不需要。仿佛只有自己被要求忍耐和守礼,而帅哥面前的门从一开始就是敞开的。
当然,从女人的立场看,这并不矛盾。她没有义务用恋爱或性来偿还别人的帮助,对一个人的人际好感与性吸引力也不是一回事。她同意另一个男人,并不会成为她应该同意我的理由。
但在男人听来,这可能像一句“你作为男人没有价值”的判决。类似的事情一再发生后,一次次具体的拒绝会变成对全体女性虚伪的认定,过去的好意会变成一段段被利用的记忆。即使这可能是与事实不符的解读,那种仿佛看到的不是原本就锁着的门,而是只对自己上锁的门所带来的屈辱感,也是可以理解的。
一次失恋不会让一个人黑化到那种地步。问题在于,即使健身、改变穿着和发型,连说话方式和交友软件资料都改过,类似的拒绝还是不断发生。每个女人都只是按照自己的心意拒绝了一次,但对一个男人来说,当这种结果累积几十次时,听起来可能就像整个世界都在说:“你不值得被爱。”
期待后失望,又为再度抱有期待的自己感到羞耻,心一点点被磨损。共情那份伤痛,与声称他对女性的怨恨是正确的,是两回事。但要求多年反复遭受的拒绝不应留下任何痕迹,也很奇怪。
当然,经历同样事情的人并不会全都变得反社会。大多数人能区分具体的拒绝与他人的权利,忍受伤痛,或找到人生的其他意义。但并非所有人都会以相同方式恢复。有些人可能会把反复遭拒概括成世界不公正地排斥自己,并认为连那些不接受自己的人的自由与权利也没有必要尊重。
那个结论是错的,但我的意思是,抵达那个结论的心理路径可能确实存在。这既不是说反复遭拒是形成反社会性的充分条件,也不是说要减轻罪犯的责任。
网上经常能看到一种说法,认为女性的平均共情能力高于男性。与此同时,也有人把在恋爱市场上没被选中的男人称为“淘汰男”。
“淘汰男”不只是没人气的意思。这个词还包含着在自然选择中落败、是不值得繁殖的低等个体之意。等于用一个词坐实了那个男人最害怕的结论。
如果完全无法想象那份伤痛,那就是共情没有作用到那个对象身上。如果明知有多痛还故意那么说,那就是准确知道该往哪里捅,并捅了下去。后者更能说明,共情能力与善良不是一回事。
我不知道赵主彬实际上尝试过怎样的恋爱。公开能确认的,不过是他被捕时25岁,以及有人作证说他人际关系并不融洽。(SBS报道) 上述故事不是已经证实的传记,而是我为了抵达他的心理而描绘的一条可能路径。
即便如此,我能理解这一类黑化。赵主彬的特别之处不仅是他黑化了,还在于他有能力真正实施并扩张恶行。
他掌握受害者的弱点后提出更过分的要求,又召集人手,制定角色和规则。他有能力看透并操纵他人,甚至能把受害者的恐惧变成商品。他不是不懂受害者的心,而是把这种理解用于支配。
当然,并不是恋爱失败造就了博士房。孤独和性挫折可以解释愤怒,却不能产生犯罪的权利。跨越恋爱失败与犯罪之间那段距离的,是赵主彬自己的判断与选择。
所以,我能共情赵主彬的黑化,但不赞同博士房。区分哪里为止是不幸、从哪里开始是选择,正是理解恶人的理由。
共情是一种能力,不是人品
共情大致可以分成两种。一种是把握对方正在感受什么的认知共情,另一种是对方的情绪也在自己内心一定程度上重现的情绪共情。人们还把怜悯、体贴、利他性全部称作共情,但其实它们是不同的概念。
共情很像雷达。救援船上装雷达,导弹上也装雷达。准确找到目标的能力,并不能决定接下来要做什么。
善于读懂人心的能力,可以用于咨询和照护,也可以用于诈骗、煤气灯操纵和胁迫。安慰别人时会选准确的话,侮辱别人时也会选准确的话。
对施虐者而言,他人的痛苦或许不是需要消除的信号,而是快感的材料。事实上,一项调查在押男性的研究发现,性施虐倾向得分与理解和管理情绪的能力呈正相关。它与直接感知情绪的能力没有显著关联,而且样本也有限,因此不能泛化。但这至少构成一个反例:不能只因为一个人犯下残酷罪行,就断定他的所有种类的共情能力都很低。
察觉他人痛苦的能力,可以是护士的工具,也可以是刑讯者的工具。造成差异的,不是能力的高低,而是拿着这些信息想做什么。
“共情能力”这种万能骂人话
日常生活里,“共情能力”这个词几乎被当作人品分数来使用。情绪识别、附和、社交能力、赞同、怜悯、利他性和道德判断,全都混在了一个词里。
Nate Pann上的一篇帖子中,妻子听了丈夫诉苦,连三文鱼刺身和酒都准备好了,却仅仅因为没有积极附和,就被说成没有共情能力。这里的共情就是附和。
另一篇帖子把共情能力的反面解释为自私和不体贴,又把它们的反面解释为利他与尊重。这里的共情就是全部良好人品。
82cook上的一篇求助帖把跳过上下文、打断别人说话的行为称为缺乏共情能力。这里的共情就是谈话技巧和礼貌。
郑俊英事件期间,一位律师谈及私力制裁的界限,也遭到“缺乏共情能力”的批评。(当时的报道) 这里的共情就是要求别人发表相同意见。
附和、人品、谈话技巧和意见一致,全都被装进“共情能力”这一个词里。到了这种程度,共情能力已经不像是解释原因的词,反而更接近贴在看不顺眼的人身上的万能骂人话。
尤其是“希望你共情我”,常常被用来表达“希望你站在我这边”。即使准确理解我为何生气,只要不赞同我的判断,就会变成没有共情我的人。反过来,即使不太理解我说的话,只要陪我一起骂,就会变成共情能力很强的人。
到了那个地步,共情就不是心理能力,而是忠诚度测试。
共情不是论证
不能只因为共情受害者的痛苦,就把具体案件中的所有陈述自动当成事实,或自动认定某种具体刑期是正确的。理解加害者的心理,也不能让减刑正当化。事实需要证据,判断需要理由。
共情也并不公平。我们更容易共情与自己相似的人、喜欢的人,以及知道其长相和经历的人。面对相同的痛苦,我们会对自己的群体反应强烈,却对竞争群体变得麻木。群体间共情研究也反复观察到了这种偏差。
共情很像聚光灯。它能把一个人照得明亮,却不会公平地把灯光之外的人也计算在内。所以,权利与责任、法律与政策不仅需要共情,还需要证据与原则。
认为只有憎恨某个人才能惩罚他,也很危险。惩罚所需要的不是正确的憎恨,而是正确的根据。即使受害者没有按照人们期待的方式哭泣,也应公平判断事实;即使觉得加害者可怜,也应能够追究其责任。
共情与赞同始终是两个不同的问题。
但网上有太多人不拿出自己主张的根据,反而攻击对方的共情能力。他们不解释自己的主张为何正确,却把不同意的人变成冷漠、自私、没有共情能力的人。把论证问题变成对方的人品问题。
在我看来,有太多人拿共情当借口,掩盖自己主张中论证的不足。主张若正确,用事实和逻辑说明即可。根据不足,就应该拿出更多根据,而不是把不同意的人塑造成没有共情能力的人。
References
- Emotional intelligence in incarcerated sexual offenders with sexual sadism
- Understanding the dark side of personality in sex offenders considering the level of sexual violence
- The role of empathy in trolley problems and variant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 Empathy and humanitarianism predict preferential moral responsiveness to in-groups and out-groups
- Their pain gives us pleasure: How intergroup dynamics shape empathic failures and counter-empathic responses
- 韩国大法院认定博士房为犯罪集团,赵主彬有期徒刑42年判决确定
- 赵主彬绘制的博士房组织图与犯罪集团结构
- 面对共情能力差得离谱的人该怎么办
- 应该筛掉的人
- 逻辑不足,共情能力不足
インターネットには、共感能力を重要視するという人が本当に多い。他人の痛みを理解しなければならない、弱者や被害者の立場で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共感能力のない人は避けるべきだ、という言葉をよく目にする。
ところが不思議なことに、そういうことをよく言う人たちが、いざ自分とは異なる感情には最も共感できない場面も数多く見てきた。自分の側の苦痛は必ず理解しなければならないが、嫌いな人の感情を理解しようとすると、その人を擁護することになる。自分の主張に同意しなければ、相手の論理に反論する代わりに、共感能力がないと言う。
共感が大切だと言いながら、共感する対象をあらかじめ決めておき、許された感情にだけ共感しているわけだ。この矛盾がおかしくて、文章を書くことにした。
私は性犯罪者にも共感できる。
そして被害者には当然共感する。犯行当時の恐怖と羞恥心、その後も日常に侵入してくる記憶と加害者への怒りを想像できる。おそらく大半の事件では、加害者より被害者にはるかに強く共感するだろう。
一方の感情を理解したからといって、もう一方を理解する能力が消えるわけではない。
共感は同意ではない
性犯罪者に共感できるという言葉は、犯罪に同意するという意味でも、許したり減刑したりしようという意味でもない。その人が感じた欲望と自己正当化、犯行が発覚した後の恐怖と羞恥心を理解できるという意味だ。
共感とは、相手の感情を理解したり、同じように感じたりすることだ。同意とは、相手の主張や行動が正しいと判断することだ。共感しながら同意しないこともできるし、共感できなくてもある主張に同意することはできる。
理解の反対は非難ではなく、無理解だ。私たちは、ある人を非常によく理解しながらも、強く非難することができる。
むしろ責任を正確に問うには、ある程度の理解が必要だ。その人が何を知っていたのか、相手の拒絶をどう認識していたのか、どのような選択肢がありながら犯行を選んだのかを知る必要があるからだ。
性犯罪者をただ怪物と呼べば楽だ。怪物は自分とは違う種なので、それ以上考える必要がない。しかし性犯罪者を人間ではない存在にしてしまうと、普通の人間がどのように相手の拒絶を無視し、自分の欲望を正当化し、犯罪に至るのかを説明できなくなる。
理解を禁じても悪が消えるのではなく、悪についての説明だけが消える。
私はチョ・ジュビンがなぜ悪い奴になったのか少しわかる気がする
チョ・ジュビンは25歳で逮捕された。彼は女性たちを脅迫して性的搾取物を作り、流布しており、役割を分担した博士部屋は犯罪集団と認定された。刑期は懲役42年だった。(韓国大法院判決の紹介、KBSの報道)
25歳になるまで、自発的な恋愛をしようと努力し続けたと想像してみよう。外見を整え、女性に話しかけ、紹介を頼み、アプリも使う。しかし女性たちは、いつも自分ではなく別の男性を選ぶ。自分にも性欲があり、誰かに選ばれたいのに、誰も自分を求めない。
もう少し具体的な架空の事例を考えてみよう。
大学に親しくしている女性の後輩がいる。課題や就職活動を手伝い、一緒に食事をし、夜遅くまで悩みも語り合い、かなり親しくなった。男性は、自分も後輩にとって特別な人かもしれないと思い、慎重に好意を伝える。
後輩は一線を引く。
「先輩は本当にいい人ですが、男性として考えたことはありません」
後輩は関係を曖昧なままにしないよう、はっきり言ったのかもしれない。しかし男性には、これまで築いてきた関係が一言で断ち切られたように感じられる。それでも好意の見返りとして恋愛を要求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考え、身を引く。
しばらくして、その後輩が飲み会で初めて会ったイケメンの男性と、その日のうちに寝たという噂を聞く。本当なのか誇張なのかもわからない。しかし、すでに傷ついた男性には重要ではない。自分は何か月も関係を築いても、いい先輩でしかなかったのに、別の男性は初めて会った日に、自分が欲しかったものを手に入れた。
ゆっくり信頼を築き、誠意を見せ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言葉を信じていたのに、女性が望む男性には、そんな手順は必要なかったように見える。自分にだけ忍耐と礼儀が求められ、イケメンの男性には最初から扉が開かれていたように感じられる。
もちろん女性の立場では矛盾ではない。助けてもらったことに恋愛やセックスで報いる義務はなく、人としての好意と性的な魅力は別だ。他の男性に同意したという事実は、自分に同意する理由にはならない。
しかし男性には、「お前は男として価値がない」という判決のように聞こえることがある。同じようなことが繰り返されると、個別の拒絶は女性全体の偽善へ、過去の好意は利用された記憶へと変わる。事実とは異なる解釈かもしれなくても、もともと閉ざされていた扉ではなく、自分にだけ閉ざされた扉を見たような屈辱感は理解できる。
一度の失恋で、人がそこまで闇落ちするわけではない。問題は、運動をし、服装や髪型を変え、会話術やマッチングアプリのプロフィールまで直しても、同じような拒絶が続くときだ。女性一人ひとりは自分の気持ちに従って一度ずつ断っただけだが、一人の男性にその結果が数十回積み重なると、世界全体が「お前には愛される価値がない」と言っているように聞こえることがある。
期待しては失望し、再び期待した自分を恥じながら、心が少しずつ削られていく。その傷に共感することと、女性への恨みが正しいと言うことは別だ。ただ、何年も繰り返された拒絶が、何の痕跡も残してはならないと求めるのもおかしい。
もちろん、同じことを経験した人が全員反社会的になるわけではない。大半の人は個別の拒絶と他人の権利を区別し、傷に耐えたり、別の人生の意味を見つけたりする。しかし、すべての人が同じやり方で回復するわけではない。一部の人は、繰り返された拒絶を、世界が自分を不当に排除したという結論へ一般化し、自分を受け入れなかった他人の自由と権利まで尊重する必要はないと考えることがある。
その結論は間違っているが、そこに至る心理的な経路が存在し得るという話だ。繰り返された拒絶が反社会性の十分条件だという意味でも、犯罪者の責任を軽くしようという意味でもない。
インターネットでは、女性は男性より平均的に共感能力が優れているという主張をよく目にする。その一方で、恋愛市場で選ばれなかった男性を「淘汰男」と呼ぶ人もいる。
淘汰男という言葉は、単に人気がないという意味ではない。自然選択から脱落し、繁殖する価値のない劣等な個体だという意味を含む。その男性が最も恐れていた結論を、一語で確定してやるようなものだ。
その傷をまったく想像できないなら、共感はその対象には働かなかったということだ。どれほど痛いか知りながらわざと言ったのなら、どこを刺せばいいか正確に知って刺したのだ。後者は、共感能力と善良さが異なるという事実をよりよく示している。
チョ・ジュビンが実際にどのような恋愛を試みたのかはわからない。公に確認できるのは、逮捕当時25歳で、交友関係が円満ではなかったという証言程度だ。(SBSの報道) 上の話は確認された伝記ではなく、私が彼の心理にたどり着くために描いてみた一つの経路だ。
それでも、この種の闇落ちは理解できる。チョ・ジュビンが特別だったのは、闇落ちしたという点だけでなく、悪事を実際に行い、拡大する能力があったという点だ。
彼は被害者の弱みを握ってさらにひどい要求をし、人を集めて役割と規則を作った。被害者の恐怖を商品に変えるほど、人を読み、操る能力があった。被害者の気持ちがわからなかったのではなく、その理解を支配に使った。
もちろん、恋愛の失敗が博士部屋を作ったわけではない。孤独と性的な挫折は怒りを説明することはできても、犯罪を犯す権利を生み出しはしない。恋愛の失敗と犯罪の間にある隔たりを渡ったのは、チョ・ジュビン自身の判断と選択だ。
だから私は、チョ・ジュビンの闇落ちには共感できるが、博士部屋には同意しない。どこまでが不運で、どこからが選択だったのかを区別することが、悪人を理解する理由だ。
共感は能力であって人格ではない
共感は大きく二つに分けられる。相手が何を感じているのかを把握する認知的共感と、相手の感情が自分の中にもある程度再現される情動的共感だ。これに同情、配慮、利他性まで全部ひっくるめて共感と呼ぶが、実際には別の概念だ。
共感はレーダーに似ている。救助船にもレーダーが付き、ミサイルにもレーダーが付く。対象を正確に見つける能力は、その次に何をするかを決めてはくれない。
人の心をよく読む能力は、相談やケアにも使えるが、詐欺、ガスライティング、脅迫にも使える。慰めるときにも正確な言葉を選び、侮辱するときにも正確な言葉を選ぶ。
加虐的な人にとって、他人の苦痛は取り除くべきシグナルではなく、快感の材料であることもある。実際、受刑男性を調査したある研究では、性的サディズムのスコアは、感情を理解し管理する能力と正の関連を示した。感情を直接知覚する能力とは有意な関連がなく、標本も限られているため、一般化はできない。それでも、残酷な犯罪を犯したという事実だけで、あらゆる種類の共感能力が低いと断定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反例にはなる。
他人の苦痛に気づく能力は、看護師の道具にもなり得るし、拷問者の道具にもなり得る。違いを生むのは能力の高さではなく、その情報を使って何を望むかだ。
共感能力という万能の悪口
日常では、共感能力という言葉は、ほとんど人格の点数のように使われる。感情の認識、相づち、社交性、同意、同情、利他性、道徳的判断が、一つの言葉にすべて混ざっている。
ネイトパンのある投稿では、妻が愚痴を聞き、サーモンの刺身と酒まで用意したのに、積極的に相づちを打たなかったという理由で、共感能力がないと言う。ここでの共感は相づちだ。
別の投稿は、共感能力の反対を利己心と無配慮、その反対を利他性と尊重だと説明する。ここでの共感は、良い人格全体だ。
82cookの相談投稿では、文脈を飛ばして話を遮る行動を、共感能力の不足だと言う。ここでの共感は会話の技術と礼儀だ。
チョン・ジュニョン事件のときには、私的制裁の限界を語った弁護士に「共感能力が足りない」という批判が出た。(当時の記事) ここでの共感は、同じ意見を言えという要求だ。
相づち、人格、会話の技術、意見の一致が、すべて共感能力という一つの言葉で呼ばれている。ここまでくると、共感能力は原因を説明する言葉ではなく、気に入らない人に貼り付ける万能の悪口に近い。
特に「私に共感してほしい」という言葉は、しばしば「私の味方をしてほしい」という意味で使われる。私が怒った理由を正確に理解していても、判断に同意しなければ、共感しなかった人になる。逆に、私の話をあまり理解していなくても、一緒に悪口を言ってくれれば、共感能力の高い人になる。
そこまでくると、共感は心理的な能力ではなく、忠誠心のテストだ。
共感は論証ではない
被害者の苦痛に共感するという理由だけで、個別事件のすべての供述が自動的に事実になったり、特定の刑期が正しいことになったりするわけではない。加害者の心理を理解したからといって、減刑が正当化されるわけでもない。事実には証拠が必要で、判断には理由が必要だ。
共感は公平でもない。私たちは、自分に似た人、好きな人、顔や事情を知っている人に、より簡単に共感する。同じ苦痛でも、自分の集団には大きく反応し、競争する集団には無関心になる。集団間共感の研究でも、このような偏りが繰り返し観察されている。
共感はスポットライトに似ている。一人を明るく照らすが、光の外にいる人まで公平に数えてはくれない。だから、権利と責任、法律と政策には、共感だけでなく証拠と原則が必要だ。
誰かを憎まなければ処罰できないという考えも危険だ。処罰に必要なのは、正しい憎悪ではなく正しい根拠だ。被害者が期待されたように泣かなくても事実を公正に判断し、加害者をかわいそうに感じても責任を問えるべきだ。
共感と同意は、最後まで別の問題だ。
ところがインターネットでは、自分の主張の根拠を示す代わりに、相手の共感能力を攻撃することがあまりにも多い。なぜ自分の主張が正しいのかを説明せず、同意しない人を冷たく利己的で、共感能力のない人間にする。論証の問題を、相手の人格の問題に変えるのだ。
私から見ると、共感を口実に、自分の主張の論証不足を覆い隠す人があまりにも多い。主張が正しいなら、事実と論理で説明すればいい。根拠が足りなければ、根拠をさらに持ってくるべきであって、同意しない人を共感能力のない人間にするべきではない。
References
- Emotional intelligence in incarcerated sexual offenders with sexual sadism
- Understanding the dark side of personality in sex offenders considering the level of sexual violence
- The role of empathy in trolley problems and variant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 Empathy and humanitarianism predict preferential moral responsiveness to in-groups and out-groups
- Their pain gives us pleasure: How intergroup dynamics shape empathic failures and counter-empathic responses
- 韓国大法院、博士部屋を犯罪集団と認定・チョ・ジュビンの懲役42年が確定
- チョ・ジュビンが描いた博士部屋の組織図と犯罪集団の構造
- 共感能力がなさすぎる人、どうすればいいですか
- 避けるべき人
- 論理不足、共感能力不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