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민하는 것들 (2)

생각을 공개하는 일.

사적인 생각을 쉽게 공개하면 안 되는 것 같다. 약점을 보여주고, 적을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얘기해야 하고, 사기꾼이 보이면 저 새끼가 사기꾼이라고 소리를 쳐야 직성이 풀린다. 물론 나도 허물이 많다. 사실 내가 드러내지 않는 허물이 조금만 공개 되도, 부끄러워서던… 누가 날 돌로 치던…해서 죽을 것 같다.

근데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 대해서는 계속 내가 이랬으면 좋겠다. 30살이 된 나도, 40살이 된 나도, 50살이 된 나도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마음에 드는건 좋다고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건 싫다고 말했으면 좋겠다.

열 여섯 살 쯤의 나는 집이 정말 가난한 게 싫었고, 가끔 학교 같이 가는 밑층 아파트 사는 아는 동생과 결혼하고 싶었지만, 스물 여섯 살 먹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서른 여섯 살의 나는 지금의 내가 무척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비슷한 식으로 열 여섯 살의 나는 스물 여섯 살의 나를 보면 살도 존나 찌고 못생겼고, 애니메이션도 보지 않고, 철학에 대한 관심은 어디로 사라졌냐고, 마지막으로 아는 동생과 결혼은 못하더라도 같이 자주 걷던 모 여고 앞 돌담길을 같이 걷고 있었어야지 생각할 것이다. 나도 십 년 뒤의 나를 이렇게 욕하면 되겠지. 재수 없는 새끼 하면서.

최근 변한 것

  • 화를 거의 내지 않게 되었다.
  • 호기심이 예전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 생존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 미래를 기대하며 행동할 수 있게 된다.

빚이 많으면 빡통이 된다.

빚이 많으면 빡통이 된다.을 스스로 실증하고, 항산이 생기고, 항산이 빚을 감소시켜줌을 알게 되니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느낀 생각: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 모든 일은 확률적으로 해야 한다고 믿는다. 저소득층 20대 남자에게 기본소득이 존재한다면 그 중 80\% 정도는 대부분을 술을 쳐마시다가, 비트코인을 사서 모두 잃는다 하더라도, 또 심지어 몇몇 양아치들은 룸빵과 오피에 허비한다 하더라도, 그 기본소득의 지원 중 일부는 올바른 사람이 올바른 목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시험 기간에 아르바이트를 쉬기 위해서 한참을 고민할 일도 없을 것이고, 시급으로 2천원쯤 더 받는 일을 하기 위해 상사의 모욕을 참지 않을 것이며, 일부는 토익을 공부를 시작할 거고, 그 중 20\%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달성할 것이다.

저소득층 10대 여자에게 기본소득이 존재한다면, 역시 그 중 다수는 옷을 사고, 새로 나온 아이폰도 사고, 달달한 음식도 사먹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불편하게 아빠한테 생리대를 사달라고 말 못해서, 생리대를 잘 갈지도 않다 질염에 걸리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주변 친구들의 공부 얘기를 듣다가, 괜히 서점에 따라가 참고서를 샀다가도, 그 중 30\% 정도는 닥친 시험 범위까지의 공부는 하게 될 거고, 역시 또 그 중 어느 정도는 좋은 성적을 받아 공부에 관심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사용된 비용의 비를 $r$라 하고 다음과 같이 정의하자. \(r = \frac{S_p}{S_p + S_n}\)

$r = 1$은 항상 될 수 없지만, 이게 $1$이 아니라고 해서 지원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틀딱인 나는 꼬추도 잘 안 서는데, 내 돈으로 저놈은 술쳐마시고 노네 하는 좆같은 감정은 이해가 간다.

$r < \frac{1}{f_p}$이기만 하면 된다. $f_p$는 승수 효과를 나타내는 상수라 하자. 어떤 좋은 선택은, 다른 좋은 선택을 부른다. 내 얘기로 예를 들면 좋을 것 같다. 내가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고등학교 때 어떤 선생님이 작년 참고서랑, 돈을 약간(참고서를 사라고) 줬기 때문이다. 돈을 5만원 받았는데, 참고서는 3만원이었고, 잔돈은 티머니 충전해서 썼다. (혼나지는 않았다.) 이제, 참고서를 사서 성적이 조금 올랐다. 반에서 2등을 했다. 2등을 하면 기분이 좋아서, 공부를 조금 더 잘하고 싶어져서 취직을 하라는 부모님이랑 대판 싸우고는 알바를 그만두고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 대학교에 입학했고, 더 운이 좋게 내가 다니고 싶던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약 10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중간에, 수많은 지출과 소득과 뭐 이것저것이 있었겠지만, 그런 것까지 다 포함해서 생각해 보자. 내가 앞으로 낼 세금중, 교육 관련해서 쓰이게 될 양을 계산해 보면, 내가 지금까지 받은 복지를 다른 학생 50명 정도한테 지원할 정도는 될 것이다. 정부는 나 같은 사람이 당첨될 확률이 50분의 1보다 크다고 하면, 여기 걸면 된다..! 반에서 2등 안쪽에 드는 반건 반 수가 30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2/30$정도고, 이건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30명 정도를 지원하면 반드시 2명 존재한다. 사실 공부를 어느 정도는 하는 학생을 지원하면 더 확률이 높겠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게 아니다.

복지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100만원 이상 벌기 전에는 미래에는 투자하지 않을 거야.”라는 마음을 가진 학생 A가 있다고 하자. A의 현재 소득은 30만원이다. 지금 돈을 잘 버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감각이지만, 얼마 전까지 소득이 전혀 없던 나는 가난한 사람이 저런 비합리적인 생각 대신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게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A한테 매달 50만원씩 줘서 A가 80씩 벌더라도, A는 편의점 음식 대신 가끔 외식을 시작할 거고, A는 당근마켓에서 중고 메종키츠네를 사는게 아니라, 메종키츠네 매장에 가서 옷을 살 것이다. 뭐 그런 차이가 생기겠는 건 참 좆같은 일이겠지만, A가 추가적으로 벌이가 생겨서, A가 50만원을 추가로 벌게 되어서 A의 소득이 130만원이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A가 좀 미친 놈 이라 이제 아우디를 사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A는 이때부터 미래를 계획하기 시작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은 어차피 곧 사라질 것이다. 가장 만족스럽게 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게 사용하는 것이다. 얼마를 벌건, 어떻게 쓰건, 결국 월말에는 0원에 가까운 통장만 남아 있다. 좆같은데 뭔 저축이고 졸라매고 할 게 있어..? 한편, 써도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경험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미래를 계획하게 된다. 아무튼, 위에서 “쓸데 없는 데에” 돈을 쓰는 것 같아 보이는 원리중 큰 부분은 이런 식으로 형성되고, 이렇게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전체 복지 지원을 받는 사람의 극히 일부겠지만, 이 사람들이 만드는 승수 효과는, 투입량보다 훨씬 클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분배를 효율적이게 만드는 방식은… 저도 잘 모르겠읍니다…

게임에 끼기.

세상엔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이 참 많다. 내가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 돈이 없어서 서울에서 쫓겨나야 된다고 말할 때는, 극렬 리버테리안에 빙의해서,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어쩔 수 없다고 하던 “바로 그” 사람이, 보유세가 올라서 서울에서 살기 힘들다고, 이런 식으로 고향에서 쫓겨나는게 맞냐는 얘기를 하더라.

일단 저게 참 좆같은게, 주택연금이라고 은행에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매달 일정 금액을 받다가, 그 사람이 죽거나 하면, 은행이 그 주택을 처분과 상속을 해주고 머 적당히 돈을 챙겨가는 제도가 있는 걸로 안다. 그냥 솔직하게, “나는 내 자식한테 집을 물려주고 싶고, 그 와중에 내 돈은 한 푼도 쓰고 싶지 않고요, 그리고 가끔 이 집이 몇억씩 올라서 이걸 담보대출 받아서 또 다른 집을 사기도 하고 싶어요. 담보대출로 산 그 집도 똑같았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하면 좋을 텐데.

할 얘기는 많지 않다. 저 “가난한 자에 대한 최소한의 생활권을 위한 복지”에 대해서는, 저 복지를 충분히 받아서 저 가난의 굴레를 탈출하고 있으므로, 반쯤 개구리고 반쯤 올챙이인 내가 얘기하기 딱 좋은 주제다. 사실 바로 윗 문단같은 사람이 보기엔, 강남에 등기치기 전까지는 탈출한게 아니지만.

여기서부터는 이제 내가 끼게 될 게임이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확률적으로만 맞다. 어떠한 얘기를 하더라도 거지가 가지지 못한 것에 불만을 갖는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대국적으로 봤을 떄 크게 변한 건 없다. 약간 변했다면은, 열 여섯 살 때의 “적절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음으로 인해” 마주한, 학원도 다니지 못할 정도 가난을 혐오했지만, 스물 여섯 살의 나는 저런 “역시 적절한 가정에서 태어났음으로 인한” 유리함을 가진 자들의 게임에 끼려 하는 참이다.

다행히도 이 게임은 제로섬이 아니다.

아무튼, 든 생각은 이거다. 이 생각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 내가 기득권이 되었을 때, 내가 세금을 내는 입장이 되어서도, 세금을 기꺼이 내고 있고, 내고 싶은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과, 세상의 세제와 복지에 대해, 모든 사람, 특히, 힘이 없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60살이 되어도 보컬로이드를 여전히 좋아했으면 좋겠다.


Reference

Qiyan Ong, Walter Theseira, Irene Y. H. Ng, Reducing debt improves psychological functioning and changes decision-making in the poor,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Apr 2019, 116 (15) 7244-7249; DOI: 10.1073/pnas.1810901116

Daniel, Kahneman. “Thinking, fast and slow.”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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