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의 일기

게으르다는 착각을 읽고

실제로 그렇게 성실히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성실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많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압박감을 받아도 성실했던 적은 삶에서 많지 않았고, 죄책감을 느꼈던 적이 훨씬 많았다. 예를 들면 게임을 할 때 책상 위에 책이 놓여져 있으면 게임을 하면서도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게임을 관둔 것은 아니었다. 죄책감을 느끼면서 게임을 했을 뿐이다.

죄책감을 느껴서 8시간 할 게임을 6시간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이런 죄책감과 압박감을 받아왔기에 약간의 성실성을 발휘해 공부를 했던 것일까? 과거로 돌아가 다른 trajectory를 그려볼 수 없고, 현재에도 여러 trajectory를 다시 그려 볼 수 없기 때문에 알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것도 의심스러워진다. 애플워치나 핏빗같은 걸로 몸무게, 걸음 수를 트래킹하면 더 많이 걷고, 체중이 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이 연구결과에서 업무성적이나, 짜증을 내는 빈도는 실험에서 관찰하는 변수가 아니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의지력이 제한적이라면, 더 많이 걷고, 체중이 감소하는 대가로 삶의 다른 영역에서 무언가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우리는 삶의 모든 면을 최적화할 수 없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어떤 것을 선택하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한다. 커리어를 선택한다면, 가족과의 저녁을 포기해야 하고, 가족과의 저녁을 선택한다면, 커리어를 포기해야 한다. 이 둘을 다 선택하고 성취한 사람이 존재는 하겠지만, 보통 사람에게 이 둘을 동시에 달성하기는 아득히 어렵다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성취를 추구할 때, 내 몸과 마음이 “아 이건 안되겠네요” 하며 나타내는, 피로감이며, 자신의 한계는 우리가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어떠한 사람은 선천적으로 조금 더 성실하거나 조금 더 게으르며, 이를 거스르려고 하면 마음이 피곤해질 뿐이고, 특별히 더 성실해질 수는 없다. 그릿이니 의지력이니 하는 것은 대체로 선천적이라고 책에서는 암시된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결정론적인 것 같지만, 우리가 이렇게 태어난 것이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돌고래가 성균관대학교에서 중문학을 전공할 수는 없듯이, 내가 하루에 8시간씩 일한 뒤에, 퇴근하고 나서 공부도 좀 하고 운동도 좀 하고 보낼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한다.

금연(혹은 개인의 모든 나쁜 습관)과 면죄부

흡연하면 니코틴이 7초 내로 뇌에 도달하는데, 이로 인해 쾌감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 분비를 활성화시킨다. 결과적으로 불안, 스트레스, 분노, 우울감이 개선되고 긍정적인 감정 상태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잠시뿐이다.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정은진 교수는 “도파민 활성화에 따른 스트레스 해소 심리는 20~40분 동안만 지속돼 니코틴을 더 보충하기 위한 재흡연 욕구가 발생한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27/2019122701844.html

Smokers then use cigarettes to reverse these withdrawal effects and “normalize” their mood.

스트레스가 개만땅인 퇴근 30분 전에 존-나빡칠때 담배를 피고, 퇴근 직후에 다시 스트레스가 찾아오면 집에 가서 샤워를 하면 되지 않을까? 대출이랑 비슷한 거 아닐까. 흡연은 도파민이 급하게 필요할 때 도파민 차입하는 러시앤캐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흡연을 시작하는 이유로 이를 꼽고 있었다.

가장 흔하고, 강력한 사례로, 개인에게 경제적 위기가 찾아올 수록 담배를 더 피고 싶어지고, 더 많이 피게 된다고 한다.(google scholar에 Smoking and financial stress로 검색하면 많은 결과를 찾아볼 수 있다.) 책의 주장대로라면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도 역시 내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그 사람 잘못만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내 일 중에서 내 책임인 것과 내 책임이 아닌 것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 전도서 1:1-2

블로그에 쓴 지난 글처럼, 인생의 대부분이 대체로 우연이고, 개인의 노력과 성실함도 대체로 우연이라면, 뭐 그렇게 스트레스받고 살 필요가 있을까. 그냥 되는 대로 살다가, 되는 대로 가면 되는 것 아닐까.

책임에 대해서

저는 부동산으로 돈 번 사람이 너무 부럽고 배알이 꼴리는 심성이 뒤틀린 사람이라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부동산/주식/코인 등등 여타 투자 모두 훌륭한 안목과 지식을 가진 투자자이며 용기있게 투자를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도 기회만 된다면 투자로 성공하고 싶습니당

부동산 투자를 잘 한 A씨가 이 “임장을 잘 다니고, 상승할 입지를 신중하게 선택했습니다. (저는 노력해서 부자가 되었어요)”라는 말을 하면, 경마공원에서 이런 대화를 하는 B 아저씨를 떠올리게 된다. “3번 말 ‘루비대쉬’가 훌륭한 종마의 자식이며, 이 말의 기수가 지난 세 번 동안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는데 불구하고 별 이유 없이 배율이 낮아 베팅을 했고, 많이 벌었네요” 인류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계속 이런 식의 가치창출을 본능적으로 거부해왔는데, (마찬가지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계속 지지해왔던) 인종차별이 사라져가는 것처럼, 불로소득에 대한 거부감 또한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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